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 나는 사랑의 실패가 필요해서 그를 소개받았다. 말해보자. 그로 글을 몇 편이나 썼는가? 그는 내 문학에 도움이 많이 되었는가? 결론은 아니다. 살며 쓰며 단 두 번 정도, 미술로 치면 어떤 의미의 오브제로써 출연했을 뿐이다. 그는 내 시집의 어떤 리듬을 만들지도, 그 어떤 세계를 짓지도 못했다. 나는 망치고 싶어서 실패하고 싶어서 너를 만났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나는 실패했다. 사랑만 실패하길 바랐는데, 인생사 뜻대로 안 된다고 한동안 나의 문학도 망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랑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새로운 고통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글이란 낭떠러지로 투신하거나 밀쳐진다 해도 쓸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는 내게 닥친 이 실패를 포기하지 않았다. 울면서 한 땀 한 땀 적었다. 그러나 애써서 만드는 고통이 과연 창작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것은 확실하다. 내가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던 인생의 거대한 고통이자 분노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상처가 적어서 실망했던 과거와 행복하다고 믿었던 가정의 기반에 깔려 있었음을, 나는 그를 통해 온전히 배웠다.

🔖 지금 도망자들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몇몇을 떠올린다. 나는 그들을 원망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 깊이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최선을 다했던 내 사랑의 나쁜 결말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낀다. 그들은 여기서 도망자로 적혔으나, 다른 책에는 세상 다시 없을 아름다운 나의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적혀 있다. 독자들도 나처럼 영원히 구분하지 못하리라. 그들이 과연 같은 사람인지. 그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과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아마도 너의 세계에서도 나는 영원히 다르게 적힐 것이다.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타이밍이 전부인 세계에서 우리의 시계는 이미 어긋났으므로.

🔖 그렇게 내 시 <루즈벨트 아일랜드>에는 세잔과 맥주와 이랑이 나란히 나온다. 그 시의 첫 줄은 금지된 책상에서 적혔다. 그가 바라고 바라던 예보처럼 눈이 아주 많이 왔고, 하는 수 없이 그의 방에 꼼짝없이 갇혀서 질리도록 맨해튼을 보았다. 그날 너와 나는 미국의 법을 어겼다.